나무 심는 사업이 완전히 끝났고, 10월이 훌쩍 지나갔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나무는 제 자리만큼 조금씩 컸다. 4월의 땅은 하염없이 냉혹했지만 5월, 6월, 7월, 8월의 땅은 모든 것들을 끌어안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 9월과 10월이 왔고, 계절은 다시 냉혹해졌다. 그 사이 이곳의 나는 이전과 참 많이 닮아있으면서도 달라졌다. 태양을 뜻하는 몽골말인 ‘Hapaa(나라)’처럼 조림지 안에서 반짝였던 몇 개월을 정리해본다. 짙은 흔적들에 대하여.
– 일단 그 넓은 1조림지에서부터 9조림지까지
그곳의 땅은 참 넓고 아무것도 없었다. 걷다 보면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늘 가늠이 되지 않았고, 막연했고, 원망스러웠다. 바람은, 모래는 또 얼마나 배려심이 없는지 늘 나를 흔들고 갔다. 온 사방을 헤매는 머리카락과 얼굴에 두덕두덕 뭍은 모래가루를 떼어내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해있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제는 그 넓은 땅을 단숨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어제보다 달라진 돌의 위치, 나무의 속도가 금세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땅에 가서 정신없이 일정을 보내다 1조림지 앞에 서면 마음이 늘 원래 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지 4조림지 사이의 높은 언덕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너무 먼 땅이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 참 많은 나무들에게
나무에 대한 애정은 솔직히 여름에 생존율 조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 전엔 나도 늘 부정했다. 작고 볼품없는 것들이 자라는 속도는 첨 더럽게도 더뎠다. 시간이 지나도 뭐가 달라진지 모르겠고 늘 잎은, 키는 자그맣게 그대로였다. 그런데 오지 않았으면 했던 8월이 됐고, 9만 그루에 대한 생존율 조사가 시작됐다. 계속계속 걸어도, 허리를 숙여 풀 속에 나뭇가지를 찾고 찾아도 끝이나지 않는다. 특히 비술나무의 잎은 때로는 새끼손톱보다 작아서 모든 전투 의지를 상실하게 했다. 그냥 대충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렁였다. 그러다 포퓰러나무가 만들어준 그늘맡에 앉아서 나무를 상세하게 쳐다봤다. ‘참 예쁘고 단단하다.. 참 예쁘고 단단하다.!’
그 치열한 땅에서 수많은 나무들이 생사를 가로질러 제 나름의 몫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노고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고, 이젠 그게 내 것이 되어 ‘세심한 시선’이 생겼다.
– 마지막은 늘 사람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잠시 들렀다 떠나는 사람, 조금 있다 가버린 사람, 오래 시간을 함께한 사람까지. 대략 50명 내외의 조림지 동료들과 마을에서의 친구들. 너무나 이질적인 사람, 장소, 그렇지만 늘 뜨거운 환대. 전혀 되지않는 말로 열심히 말하다 방전됐던 기억들. 하늘에 대고 깔깔깔 크게 웃었던 많은 날들. 말그데로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 마음 졸였던 몇 일들. 그렇게 늘 곁에 제 몫을 해주시는 주민분들, 동료들이 있었고 주민팀장님이 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의 한 시절을 액자로 담아 선물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했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마음이 달아올랐다. 그 순간이 알알이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운 눈빛들, 훌쩍이는 소리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몸들. 그렇게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함께 모든 순간을 경험하고 나눈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이질적인 많은 것을 배웠고 각자 함께 나눠 가졌다.
그렇게 또다시 11월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
나무 심는 사업이 완전히 끝났고, 10월이 훌쩍 지나갔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나무는 제 자리만큼 조금씩 컸다. 4월의 땅은 하염없이 냉혹했지만 5월, 6월, 7월, 8월의 땅은 모든 것들을 끌어안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 9월과 10월이 왔고, 계절은 다시 냉혹해졌다. 그 사이 이곳의 나는 이전과 참 많이 닮아있으면서도 달라졌다. 태양을 뜻하는 몽골말인 ‘Hapaa(나라)’처럼 조림지 안에서 반짝였던 몇 개월을 정리해본다. 짙은 흔적들에 대하여.
– 일단 그 넓은 1조림지에서부터 9조림지까지
그곳의 땅은 참 넓고 아무것도 없었다. 걷다 보면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늘 가늠이 되지 않았고, 막연했고, 원망스러웠다. 바람은, 모래는 또 얼마나 배려심이 없는지 늘 나를 흔들고 갔다. 온 사방을 헤매는 머리카락과 얼굴에 두덕두덕 뭍은 모래가루를 떼어내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해있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제는 그 넓은 땅을 단숨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어제보다 달라진 돌의 위치, 나무의 속도가 금세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땅에 가서 정신없이 일정을 보내다 1조림지 앞에 서면 마음이 늘 원래 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지 4조림지 사이의 높은 언덕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너무 먼 땅이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 참 많은 나무들에게
나무에 대한 애정은 솔직히 여름에 생존율 조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 전엔 나도 늘 부정했다. 작고 볼품없는 것들이 자라는 속도는 첨 더럽게도 더뎠다. 시간이 지나도 뭐가 달라진지 모르겠고 늘 잎은, 키는 자그맣게 그대로였다. 그런데 오지 않았으면 했던 8월이 됐고, 9만 그루에 대한 생존율 조사가 시작됐다. 계속계속 걸어도, 허리를 숙여 풀 속에 나뭇가지를 찾고 찾아도 끝이나지 않는다. 특히 비술나무의 잎은 때로는 새끼손톱보다 작아서 모든 전투 의지를 상실하게 했다. 그냥 대충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렁였다. 그러다 포퓰러나무가 만들어준 그늘맡에 앉아서 나무를 상세하게 쳐다봤다. ‘참 예쁘고 단단하다.. 참 예쁘고 단단하다.!’
그 치열한 땅에서 수많은 나무들이 생사를 가로질러 제 나름의 몫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노고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고, 이젠 그게 내 것이 되어 ‘세심한 시선’이 생겼다.
– 마지막은 늘 사람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잠시 들렀다 떠나는 사람, 조금 있다 가버린 사람, 오래 시간을 함께한 사람까지. 대략 50명 내외의 조림지 동료들과 마을에서의 친구들. 너무나 이질적인 사람, 장소, 그렇지만 늘 뜨거운 환대. 전혀 되지않는 말로 열심히 말하다 방전됐던 기억들. 하늘에 대고 깔깔깔 크게 웃었던 많은 날들. 말그데로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 마음 졸였던 몇 일들. 그렇게 늘 곁에 제 몫을 해주시는 주민분들, 동료들이 있었고 주민팀장님이 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의 한 시절을 액자로 담아 선물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했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마음이 달아올랐다. 그 순간이 알알이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운 눈빛들, 훌쩍이는 소리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몸들. 그렇게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함께 모든 순간을 경험하고 나눈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이질적인 많은 것을 배웠고 각자 함께 나눠 가졌다.
그렇게 또다시 11월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