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온 편지[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 (8) ? 박정현 단원

실은 두번째 쓰는 에세이다. 이 에세이 전에 에세이를 이미 하나 썼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 에세이를 업로드하지 않고, 새로이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읽지 못한 당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알려주자면, 첫번째 에세이에는 사람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다. 심지어 한때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 혹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 그것을 다 쓰고 나서 마음이 후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답답해져서 잠시 바람을 쐬러 로비로 나왔는데, 그때 겪은 경험이 갑자기 나의 모든 것을 휘감아버려 새롭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로비로 나와보니, 헝거르졸 부팀장님이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걸까 궁금하여 가까이 가보니, 플라스틱 박스 세 통에 흙을 담고, 거기에 마늘을 심고 계셨다. 그저 곁에 같이 쪼그려 앉아 보고 있었는데, 부팀장님이 마늘 몇 알을 다듬으시더니 내게 심으라고 주셨다. 그래서 부팀장님이 하시던 대로 간격에 맞춰서 알을 흙에 박아넣는데,

‘폭신’

너무 놀라서 마늘을 놓칠 뻔했다. 너무 축축하지도 않고 너무 메마르지도 않은 적절한 촉촉함, 너무 뭉쳐지지도 바스러지지도 않은 적절한… 그래, 몰캉거림. 그 촉감이 손끝에서부터 등을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나를 훑고 날아갔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한 알 한 알 소중히 심기 시작했다. 한 알 한 알 심길 때마다 흙은 마치 내 손을 끌어안고 놓고 싶지 않은 듯, 내 손끝에 여운을 한 땀 한 땀 남겼다. 그 작은 황홀한 만남은 결국 끝이 났지만, 나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미련이 남았는지 그저 애꿎은 흙을 계속 어루만질 뿐이었다.

무언가 너무 작아보였다. 나의 마음도, 심란함도 모두 작아보였다. 도리어 이 작은 흙이 그 모든 것보다 커보였다. 밀도나 부피로 보았을 때 작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 존재가 우주보다 광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광대함을 잊고 살았는지 문득 깨달았다. 다신칠링을 떠난 지 분명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다신칠링을 떠나기 직전, 망연히 눈바람을 맞으며 조림장을 거닐던 내가 있었다. 콧물이 나올 만큼 추운 날씨였는데도 무언가 허전함에 그저 텅 빈 조림장을 빙빙 맴돌았다. 바람에 잎을 다 잃어버린,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손끝에 스치며 마음에 담았었다. 그때 분명, ‘너를 잊지 않겠다. 너희를 잊지 않겠다.’ 되뇌던 내가 있었는데, 그때의 나를 나는 잊어버렸었나보다.

문득 이 센터를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보고 싶었다. 아마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을 곳곳을 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화장실의 비누받침대, 복도의 벽, 계단의 난간 밑부분 등등 일층부터 삼층까지 여기저기 한참을 손으로 만지며 다녔다.

분명 만진 건 나였는데, 내가 만져지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올라와 나와 깊이 만난 감정님은 바로 다름 아닌 ‘실망’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 물론 실망을 피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계속 실망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실망이 내게 실망하면 좋겠어서. 그래야 나도 실망에게 그렇게 작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도 실망도 알게 될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질척거리는 것도 지치더라. 그렇게 지치고 지쳐서 텅 비어버린 나를 오늘 흙이 만나주었다. 흙이 해결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간만의 맞닿음이 다시금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어용치멕 팀장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나를 잊지 말라던 온드라흐 경비원 아주머니도 만나고 싶어졌다. 언젠가 다신칠링으로 출장이 잡히면 꼭 따라가야겠다. 많은 인사를 건내지 못해도, 함께 수다를 떨지 못해도, 온기가 있었던 그곳이 문득 그립다.

아, 안 되겠다. 이대로 못 끝내겠다.

바보같이 웃었던 시찌레 형은 잘 있을까.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와서 기웃거리며 구경하던 다시더르쯔 형은 잘 있을까. 팀장님과 싸워서 결국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볼강 아주머니는 잘 계실까. 소리가 너무나 우렁차서 조림지 하나를 건너서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바트치멕 아주머니는? 항상 활짝 웃어주시고 노래를 잘 부르셨던 사라 아주머니는 잘 계실까나. 무언가 모르게 항상 수줍어 하셨던 잠바 아주머니는? 무언가 항상 든든했던 어요만다흐 아주머니는? 꼬장꼬장하지만 정 많던 챙다요시 아주머니는???

하나하나 이름이 다 기억이 난다.
한분한분 얼굴도 모두 떠오른다.
스쳐지나간 오십명 모두 그렇다.

살갗이 닿았던 그곳이 그립다.
사람과 ‘함께’ 했던 그곳이 그립다.

매일, 머리를 서쪽에 두고 자다.

#몽골에서 #어떻게든 #폭신폭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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