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온 편지[2017몽골] 오늘은 나한테 잘 합시다 ? 김찬미 단원

조림사업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매일매일 정시에 출근하던 규칙적인 생활을 벗어나 잠에 드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꽤나 불규칙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도 많아진 걸까. 요즘은 꽤나 답답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깎아먹는 나쁜 말들을 하기도 하고, 울적해하거나 예민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오늘은 나에게 잘하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유시간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림 사업을 하던 때에 비해서 시간이 많아졌을 뿐이지 나름 주민 자치 사업을 두 개나 하고 있다. 주민직원 분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도 하고, 돈드고비 지역주민 분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도 하고 있다. 교육을 마치고 온 날에는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에 보람차고 뿌듯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도 계속 답답하고 마음이 허했던 것은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만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는 있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 더욱 길었으니까. 물론 사람이 항상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 때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더욱 활력을 주는 법이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아나 보다. 항상 일개미같이 지내왔기에, 막상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쓸데없는 강박에만 갇혀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내렸던 결론은 나에게 잘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다는 그 자체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 가운데서 느끼는 여유를 즐기는 것. 즉 내가 느끼던 쓸데없는 강박을 최대한 벗어나고자 했다. 요즈음의 이 답답하고 싱숭생숭한 시기가 지나갈 때 까지 만이라도. 물론, 가장 중요한,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나에게 잘 하는 또 다른 방법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떳떳하게 여기는 모습만이 아닌, 추악한 내 모습까지도. 특히 개발협력을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개발협력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서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느껴지는 추악한 마음 사이에서의 괴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RBA(인권에 기반한 접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돕고 도움을 받는 그런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함께하는 수평적인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윗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겼나보다. 주민 분들로부터 단순히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답답함과 언짢음이 밀려왔다. 물론 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보다는 답답하고 언짢은, 그런 추악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성적으로 맞는, 머리로 아는 그 모습대로 행동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추악한 마음을 이성적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지금의 내 모습, 그 모습 그대로를 나 자신이라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사실,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부끄러운 생각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던 것에서 벗어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그 자체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실, 앞서 얘기한 나의 그런 모습을 에세이에 쓰는 그 자체가 좀 부끄럽다. 나는 추악하고 부족하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동네방네 떠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물론 이는 요즘의 내가 ‘답답하고 싱숭생숭한 시기’를 지나는 중이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금 잠깐, 이 짧은 시기에만 느끼는 감정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한 가지 감사한 것은, 그런 감정만을 느끼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시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이성으로 감정을 조금은 다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위해서 발버둥 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금만 더, 적어도 지금의 싱숭생숭한 시기를 지나갈 때 까지만, 잘하자.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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