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온 편지[2017몽골] 가르쳐 준 것, 그리고 품고 갈 것 ? 김찬미 단원...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나 1년 동안 몽골에 다녀올 거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들과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고 장기봉사 신청을 했고 서류합격 후 면접까지 본 상황이라 이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다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떨어지게 되면 부모님께 괜한 걱정 끼치는 것 일까봐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는 나의 말에, 아무리 그래도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는 얘기했어야 한다고 친구들이 핀잔을 주었다. 그러던 찰나, 푸른아시아 사무실로부터 합격 연락이 왔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어머니의 반응은 담담했다. 한 소리 거하게 들을 줄 알았는데. 왜 혼내지 않으시냐는 내 질문에 어머니는 “너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야?”라고 하셨고 나는 “당연히 아니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뭘 물어.”하며 어머니는 쿨하게 답하셨고, 그렇게 나는 이 곳에 올 수 있었다.

장기봉사는 나에게 몇 년간 염원해왔던 오랜 꿈이었다. 처음 개발협력이라는 꿈을 품었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실제로 그 현장을 봐야만 현실감각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현장을 모른 채 이론만 알고 있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현장’을 보고, ‘개발협력의 민낯’을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이 곳 몽골 땅에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큰 이상만을 갖고 왔기에, 현실에서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 중에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이를 통해 스스로가 개발에 있어 얼마나 순진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한 편, 책이나 이론을 통한 접근에서는 절대 알지 못했을 것들을 알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금, 단원 생활의 절반을 넘긴 이 시점에서, ‘몽골에서의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 둘이 사는 법, 그리고 내려놓음

나는 원래 혼자 다 도맡아하는 편이었다. 팀플을 하게 되면 실질적 조장은 거의 항상 나였다. 원래 오지랖이 넓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내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차라리 내 손을 다 거쳐서 내 맘에 들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몸은 힘들지 몰라도 맘은 훨씬 편했다. 그러다보니 파트별로 나누어 자료조사를 하더라도 이를 다 수합하는 것은 나였고, 까다로운 파트를 맡는 것도 나였다. 자료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ppt를 만드는 것도 나였고, ppt를 최종 수합하여 디자인을 다듬는 것도 나였으며 심지어 그래놓고 발표도 했다. 21년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단원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바로 나를 내려놓는 법이었다.

나와 같이 돈드고비 단원으로 파견된 일우언니 역시 ‘나 같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성향이 비슷한 사람 둘이 한 곳에 모였는데,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그동안 다 내 손을 거쳐서 내 마음에 들게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이 곳에는 나와 파트너 단 둘 뿐이라는 것. 결국 누구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그 일을 하고 싶었더라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사정이 있어 잠시 한국을 다녀오기까지 했더니 상황은 더 애매해져 있었다. 21년을 ‘직접’ 해오던 사람에게는 둘이 같이 무언가를 나눠서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둘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제일 힘들었다.

내게 있어 ‘둘이 사는 법’이란,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함으로서 내 마음에 들게 만들고자했던 그 마음과 그 욕심을 내려놓는 법이었다. 내가 다 하지 않고, 타인에게 기회를 주는 법. 처음에는 이게 자기합리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려놓는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방치하고 유기하는 것이라면 분명 자기합리화이겠으나, 서로가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타인의 능력과 의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기회를 남겨두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내려놓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대방이 그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거나, 상대방이 일을 해주는 것에 대해 계속되는 호의가 내 권리인 줄 알게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경계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내려놓음’의 연장에서, 나의 한계에 대한 인정과 내려놓음 역시 배우고 있다. 특히나 나의 체력적인 한계에 대해서. 사실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하다. 앞서 얘기한 둘이 사는 법에서의 내려놓음에 비해서, 자기합리화가 되기 정말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내 체력이 고갈되어 병이 나지 않게끔 체력을 비축하고 관리하면서도, 그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여전히 어려운 외줄타기 중이다.

 

# 봉사자도 사람이구나

현장을 경험하기 전, 나는 개발협력 분야를 무슨 성스러운 일처럼 생각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발협력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장기봉사를 통해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현장을 버틸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 확인해보고 검증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왕 검증해보는 거,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굴러보고 싶었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나의 한계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생각은 파견 전과 후에 가장 많이 달라진 생각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개발협력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으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열악한 생활환경이었다. 특히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처음 단원 숙소를 결정할 때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죄책감까지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단원으로서의 생활을 하면 할수록, ‘봉사자도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봉사자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희생만을 강요당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생활환경을 보장받아야만 지치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봉사활동의 지속성과도 결부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봉사자 개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더 나은 활동들을 해 나갈 수 있음을, 그를 위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적절한 환경들이 제공되어야 함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 그렇다면 앞으로의 나는

이제 남은 한 달 후면 올해의 조림사업은 끝이 난다. 그 후에는, 주민자치사업과 함께 길고 긴 자기계발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자기계발의 시간은 말 그대로 나 자신을 계발하는 시간인 동시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나의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되어질 것이다. 이에 그동안 배워온 것들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를 고민하게 되겠지.

지난 몇 개월 간 내가 푸른아시아 단원으로서 해왔던 모든 것들은 단순 노력봉사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단순히 내가 학부생이어서 학문의 깊이가 얕아서라기보다는, 나의 관심사나 전공을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그 방안을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푸른아시아 단원에는 공대생이 더 많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내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전공인 국제관계학과 경제학을 개발협력에, 그것도 개발협력의 ‘현장’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겠느냐. 고등학생 때부터 개발협력을 꿈꿔왔고 그렇기에 주 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하여 공부해왔다. 하지만, 이 학문들은 개발에 있어 넓게 보는 generalist는 될 수 있겠으나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갖는 specialist가 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generalist와 specialist 사이에서의 고민이 그동안은 이상 속에서의 고민이었지만, 정작 현장에서 현실을 맞닥뜨려보니 더더욱 깊이 와 닿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푸른아시아 단원 생활이 개발협력에 대한 의욕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단원 생활이 오히려 개발에 대한 꿈을 꺾어버리고 회의감을 들게 한 경우가 주변에 종종 있는데, 나는 이상만을 바라보던 것에서 벗어나 현장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좋은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먼저, 이 전환점을 조심히 잘 마무리하여 지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곳 몽골에서 얻은 여러 인사이트들과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품에 잘 안은 채로, 나의 전공을 현장에 녹여낼 방법들을 찾기 위해 계속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분명히 여러 고민들과 어려움들이 있을 테지만, 몽골에서의 1년간의 단원 생활이 그 고민들을 이겨낼 넉넉한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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