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출의 기후 리터러시_09.12] 트럼프 믿고 투자한 한국 기업, 돌아온 것은 추방과 불신?

트럼프 믿고 투자한 한국 기업, 돌아온 것은 추방과 불신?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의 충격... 미국 현대제철에선 이런 일이


▲2024년 9월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조지아주 서배너의 조니 머서 극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후보는 "내게 투표하면 제조업이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독일에서 바로 이곳 조지아로 대규모 이동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AFP 연합뉴스

최근 우리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약인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의 최대 조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 관세에 집중하면서 이민법, 환경 정의 등 그동안 고려하지 않았던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인 2024년 9월 조지아주 서배너 유세에서 한국을 겨냥해 "트럼프에 투표하면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독일에서 조지아로 제조업의 대규모 이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면서 "해외 기업들에 특별 지역을 제공할 것이고 그곳은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미국에서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높은 수입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해외에서 빼앗아 올 것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의 이런 관세 폭탄 압박에 한국 정부는 지난 7월 말 3500억 달러(약 487조 원)의 대미 제조업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아울러 8월 한미 정상회담 때 한국 대기업 총수들은 1500억 달러(약 210조 원) 대미 직접 투자 계획을 추가 공개했다.


언론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설비 투자 규모가 1060억 달러(약 145조 원)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의 대미 투자 5000억 달러(약 684조 원)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트럼프의 제조업 르네상스는 이렇게 한국의 도움으로 부활하는 것 같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제조업은 위축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대미 전기자동차 수출은 164대로, 작년 7월의 6209대에 비해 2.6%에 불과했다. 사실상 전기차 수출이 0%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고 수출은 줄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통계청은 올해 1분기 제조업 일자리가 작년 1분기보다 1만 2000개나 줄었다고 한다. 트럼프 공약대로 한국 제조업은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고 한국에서 제조업 일자리 빼앗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지속 가능성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연합뉴스

트럼프는 해외 기업들에 특별 지역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4일 미국의 국토안보수사국(HSI)과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은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을 벌였다. 체포된 475명 중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이라고 했다.


올해 연말 준공을 목표로 43억 달러(약 6조 200억 원)라는 거액을 투자해 온 한국 기업의 건설 현장을 급습해 불법 체류자 단속을 명분으로 대규모 체포를 벌인 일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언론에선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투자를 끌어내고 뒤통수를 친다'는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이민법 위반으로 촉발된 한국 기업들의 미래 지속 가능성에 사건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부터 숙련된 기술자가 너무나 부족한 미국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쳐야 한다.


미국이 추진하는 제조업 르네상스의 목표는 '미국의 부흥'과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에 있다. 이민세관단속국에 제보했던 토리 브레넘 미 공화당원은 "한국이 투자한 배터리 기업이 조지아 주민을 고용하겠다고 해놓고, 세금 감면만 챙긴 것은 기만이다"라고 주장했다. 돈은 한국이 내고 성과는 미국이 독점하겠다는 말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이 전면적으로 후퇴하면서 숙련된 기술자들이 대단히 부족한 나라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이제부터 미국 현지 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 최소 2~5년 걸리는 일이다. 이는 배터리와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5000억 달러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현대제철이 마주친 '환경 정의'


▲3월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3월 24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백악관에서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에 4년간 58억 달러(약 8조 1000억 원)를 투입해 2029년까지 전기로 방식의 '저탄소 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270만 톤의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고 이를 미국 현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부품 공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철강 수입 관세 압박에 노출된 현대자동차그룹의 공급망 생태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와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이를 환영하면서 세금 감면 혜택, 항만과 송전망 인프라 건설, 부지 용도 변경 등의 혜택을 약속했다. 특히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당시 백악관 행사에서 "현대제철로 인해 직접 일자리 1400개, 간접 일자리 4100개가 만들어지고 루이지애나 제조업이 회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연방과 주정부의 환영과 달리 제철소 부지 주민들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주민 건강, 환경 오염 해결, 주민의 참여와 지지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이런 환경 정의와 주민 결정권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저항과 법적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과의 문제 해결 여부에 따라 제철소 착공이 장기간 유예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루이지애나 TV 매체인 'WBRZ'는 4월 1일 "정부는 58억 달러 현대제철 유치를 축하하지만 어센션 패리시 주민들에게서는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지역 주민 조직인 '루럴 루츠 루이지애나' 창립자인 애슬리 가이그나드는 "그동안 암모니아 시설이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제철소라니! 이미 문제 된 기존의 발암 물질과 함께 철강과 또 마주하게 되었다"면서 "주민들 가운데 누가 현대제철 유치를 동의했는가? 현대제철은 지역 공동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의 부지로 결정된 어센션 패리시는 '암의 골목'(Cancer Alley)으로 불리는 환경 취약 지대 한복판이다. 이미 수십 년간 석유화학·정유산업으로 암 발병률이 미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 동안 쉘(Shell) 화학 공장에 저항한 기록은 환경 정의 교과서에 나올 정도다.


당시 쉘 화학 공장 저항을 지원한 환경 시민단체들도 지금 나서고 있다. 그중 '루이지애나 버킷 브리게이드'는 8월 현대제철 유치에 대해 '역사적인 마을들을 파괴하려는 계획'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현지 공동체의 보존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우선시할 것을 촉구했다.


현대제철 부지 바로 옆 제임스 패리시에는 잘 알려진 전례가 있다. 1990년대 다이아몬드라는 작은 흑인 마을 주민들은 쉘 화학 공장의 오염과 질병 피해에 맞섰다. 1997년 쉘 공장의 폭발 사고로 촉발된 주민 저항은 전국적·국제적 이슈가 되었고 '환경 인종차별'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12년이 지난 2002년 쉘은 주민들의 집을 매입하고 이주를 보장했고, 이는 미국 환경 정의 운동의 상징적 승리로 기록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집단적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현재 환경단체들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은 현대제철을 주목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현대제철 부지가 결정되었다. 현대제철이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만 주민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까? 현대제철이 생산 차질을 빚는다면, 미국 내 현대차·기아차의 완성차 공장은 철강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이는 미국 내 자동차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준비를 위해


트럼프는"'해외 기업들에 특별 지역을 제공할 것이고 그곳은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에서 제공된 여러 지역이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한국이 트럼프 관세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환경적, 법적인 위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프로젝트별로 '해외 투자 위험 영향 평가'를 포괄적인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산업계 전문가, 국제 표준 전문가, 시민사회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해외 투자 위험 영향 평가 기구'를 만들어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위험 영향 평가를 하면서 반드시 한국의 '산업 공동화'와 '지역 공동체 위기'를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푸른아시아의
활동에는
참여가 필요합니다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203-890062-76504
예금주 :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후원문의
02-711-1450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전화번호 02-711-6675
팩스 02-711-6676
이메일 greenasia@greenasia.kr
사업자번호 110-82-13185 (대표자 : 손봉호)
주소  우) 03736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68, 5층 

         (동신빌딩)

English

© Copyright 2023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All Rights Reserved

푸른아시아의
활동에는
참여가 필요합니다.

후원계좌
KEB하나은행 203-890062-76504 / 예금주 :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후원문의
070-7865-6133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전화번호 02-711-6675
팩스 02-711-6676
이메일 greenasia@greenasia.kr

© Copyright 2023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All Rights Reserved

사업자번호 110-82-13185 (대표자 : 손봉호) 

주소 우) 03736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68, 5층(동신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