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기후리터러시] ① 몽상을 비웃는 세계에 맞선 날씨의 학자, 제임스 글레이셔

[다 함께, 기후리터러시] ① 몽상을 비웃는 세계에 맞선 날씨의 학자, 제임스 글레이셔


우리는 매일 날씨(기상)부터 시작한다. 태양이 일상에 미광을 비추면, 우리는 날씨를 토대로 움직인다. 날씨에 맞는 옷과 신발 등을 입고 사람을 만나면, 날씨 이야기부터 꺼내곤 한다. 날씨에 따라 식사 메뉴를 정하고, 행사나 이벤트가 있을라치면 날씨부터 파악한다. 의식주와 일상은 그처럼 날씨와 ‘착붙’이다. 이런 날씨가 짧은 기간의 대기 현상을 일컫는다면 기후는 오랜 기간에 걸친 평균적인 대기 상태를 뜻한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듯, 날씨가 쌓여 기후가 된다. 그런 기후가 위기, 온난화(warming)를 넘어 열대화(boiling) 시대다. 이젠 기후에 대한 감각을 깨우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하늘을 향한 집념에서 기상학이 태어났듯, 일상 속 기후 감수성을 키워야 할 때다. 날씨가 모여 기후가 되듯, 작은 이해에서 시작한 큰 변화, 그 이야기를 나눈다. 기존 인식을 넘어 날씨와 기후를 따라 새롭게 열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푸른아시아 기후와공동체실 김이준수 활동가가 [다 함께, 기후리터러시] 연재를 통해 작은 쇄빙선(수면의 얼음을 부숴 항로를 여는 배) 노릇을 하고자 한다.




(사진. 제임스 글레이셔.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 이전에 하늘이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 하늘 깊숙이 올라 날씨 예측을 꿈꿨던 이가 있었습니다. 19세기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James Glaisher, 1809~1903)입니다. 문제는 당시 날씨 예측은 언감생심, 점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취급받던 때였습니다. 대류권-성층권-중간권-열권 등의 용어조차 없던 시절, 하늘은 그저 수수께끼와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건, 그저 하늘이 내린 처분일 따름이었죠.

그러니 제임스는 ‘인간이 감히 하늘의 일(?)을 맞히겠다고?’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겠죠?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과학이 크게 발전했다고 하나, 당대 과학의 눈으로 보기에 일기예보는 ‘비과학’이었고, 조롱 혹은 무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시대건 대세에 굴하지 않는 ‘또라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임스는 하늘 어딘가에 닿으면, 어디로 튈지 당최 알 수 없는 날씨 예측이 가능한 단서가 있으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읽고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날씨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오고자 그가 했던 선택은 열기구였습니다. 몽상을 비웃는 세계에 맞선 도전이었죠.

1862년 그는 대기 상층 기온을 측정하고자 열기구 조정사 헨리 콕스웰과 함께 열기구에 올랐습니다. 날씨를 미리 알아야겠다고,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일을 저지르다니요. 복작복작 많은 사람이 열기구 비행을 보고자 모여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종종 인용한 ‘연기와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속담 마냥, ‘바보 제임스’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보기 위한 인파였습니다.


(사진. <에어로너츠>스틸컷1. ©더쿱)


그땐 이 열기구 비행이 일기예보의 단초가 될 줄은 제임스를 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비행 덕분에 미지의 하늘이 열립니다. 날씨를 예측하게 되는 첫 단추를 끼운 순간, 두둥실 열기구를 따라 제임스의 마음에도 한줄기 볕이 듭니다. 그토록 천착했던 연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맨몸으로 생을 걸고 대기와 마주한 용기 덕분일까요. 라이트형제와 닐 암스트롱 이전, 인간을 하늘로 데려다준 이 모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고도 1만 미터 이상 상공을 비행(비공식)하면서 대기가 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냅니다.

물론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 마냥 아름답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았겠지요. 인간이 가보지 않은 고도와 추위에 까무러치기도 하고, 몸이 굳기도 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와중에도 제임스는 고도별 기온과 습도 변화를 기록했고(아쉽게도 기록이 남아 있진 않습니다), 위로 갈수록 수증기가 줄고 기온이 떨어지는 한편 비구름 위는 되레 맑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땅에 귀환했고, 이 도전은 세상의 숨겨진 비밀을 한꺼풀 벗겨냈습니다. 하늘을 달려 얻어낸 대기의 상태와 동작을 연구하는 기상학이 인간의 품에 안겼습니다. 날씨 예측의 길이 펼쳐지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해운, 항공, 농업, 재해 등에 큰 영향을 주는 기상 관측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날씨 패턴,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됐습니다. 과학 발전과 함께 일기예보는 일상이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날씨가 궁금합니다. 날씨만큼 인간 활동과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을까요. 우리는 날씨라는 큰 우산 아래 행동반경을 선택하고 희로애락을 경험합니다. 일기예보는 필수가 됐죠. 날씨를 알고 싶은 마음, 이해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자신의 믿음과 연구를 위해 행동했던 제임스 글레이셔 덕분입니다. 그 마음이 지금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 등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하는 ‘기후리터러시’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통하니까요.


(사진. <에어로너츠>스틸컷2. ©더쿱)


제임스의 이 두근두근 모험담을 영감으로 삼은 영화가 있습니다. <에어로너츠>(2020년 개봉). 개봉 당시 큰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만난 덕분이었을까요. 저는 열기구를 함께 타는 듯한 기분으로 환상적인 모험을 즐겼습니다. 아래로 떨어질 듯한 공포와 숨 막히는 비행의 쾌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하늘 위 풍광을 오갔습니다. 다만 영화는 실화에 근거(based on)하기보다 영감(inspired by)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리처드 홈스의 소설 《하늘로의 추락》(Falling Upwards: How We Took to the Air)이 원작인데, 열기구 조정사가 영화에서는 아멜리아 렌이라는 가공의 인물로 여성입니다. 실제로는 남성인 헨리 콕스웰이 열기구를 조정했고요. 따라서 영화는 실제 역사와 다른 각색과 영화적 표현 등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바라보는 것만으론 바뀌지 않습니다. 당시 날씨 예측이 가능할 거란 몽상(?)을 비웃는 세상의 무시와 위험을 뚫고 나섰던 제임스의 행동이 일기예보 초석을 다졌습니다. 지금 그 이름을 떠올리는 걸 보면, 그의 순전한 믿음은 점쟁이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됐습니다. 기후리터러시 이야기는 그래서, 제임스 글레이셔부터 시작합니다. 당신과 함께 나누는 기후리터러시 이야기가 사소하고 작더라도 어떤 행동의 단초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서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했던 말을 되새깁니다.


 

_ 김이준수(기후와공동체실)

장래희망은 ‘기후민주시민’이다. 인류가 세상을 직조하는 가장 큰 요소는 폭력과 이권이라고 여기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견디고, 잡을 수 없는 별이라도 힘껏 팔 뻗어 잡고 싶은 낭만도 함께 품고 있다. 매년 빠지지 않는 소원은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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