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아시아와 함께하는 사람들 (1) : 상호 이해의 신뢰 사회를 꿈꾸는 고재광 사무처장

푸른아시아와 함께하는 사람들 (1)

: 상호 이해의 신뢰 사회를 꿈꾸는 고재광 사무처장

 

푸른아시아의 든든한 맏이 활동가이자 시니컬한 매력을 지닌 고재광 사무처장을 만나보았습니다.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푸른아시아의 기후위기 대응 활동과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활동가, 파트너, 시민들과 협력해 나가는 종합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여하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고재광이라고 합니다.

 

 

요새 근황은 어떠신가요?

 

요새 지구적으로나 국내적으로도 여러 가지 짜증날 만한 일들이 많은데요. 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푸른아시아와 함께 한 시간이 십여 년이 넘게 되면서, 그간 조직 활동도 나름 안정화되고, 동료 활동가들과도 서로 눈빛만 봐도 생각을 알 만큼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되도록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활동하려고 해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으로 상대를 적대시하는 일들이 지구적으로도 한국에서도 너무나도 많아서 짜증이 나지만, 짜증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런 생각으로 가볍게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저의 근황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푸른아시아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제가 대학원생이던 1997~98년경 푸른아시아 사무실이 마포의 불교방송 빌딩에서 있을 때였는데요. <한국정치연구회>에서 정치사상을 같이 공부하던 당시 푸른아시아의 제진수 사무처장과의 친분으로 영어문서번역 자원봉사를 하면서 처음 푸른아시아와 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푸른아시아에 자주 “놀러” 오면서 국제적인 협력 아젠다와 푸른아시아의 활동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고, 다소 낯선 사막화, 주민자립, 캠페인 등 푸른아시아라는 단체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죠.

그 후에 제가 한 10년 정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는데요. 그때 현재의 오기출 상임이사님과 제진수 사무처장님을 만나 뵙고 일종의 “꼬심”에 넘어갔다고 할까요? ‘과연 환경운동이 나와 어울릴까?’라는 생경함이 있었지만, 늘 그렇듯 사람을 보고 푸른아시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는 다소 익숙했지만, 제 사견으로는 부문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이 어떻게 정치경제적 대항운동과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한번 직접 들어가서 몸소 겪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가지 매력적이었던 것은 푸른아시아의 첫인상이랄까? 개발도상국의 현장에 있는 주민들과 현장에서 같이 살면서(?) 부대끼며 뭘 해보려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말로 하는 것, 발표하고 논쟁하는, 전문용어로 ‘입을 터는 것’에만 익숙하던 제게는 실천적인 활동은 늘 존경의 영역이었으니까요.

푸른아시아에 들어와서 보니, 현장 활동에도 여러 약점과 방해물들이 곳곳에 포진한, 험난한 곳이라는 게 보였어요. 그럼에도 ‘대강의 방향이 정해지면 일단 실천하고 본다. 그리고 수정해 나간다’는 시민운동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머리만 굴리는 삶에 염증도 났었는데, 그 시절 푸른아시아를 만난 셈입니다. 뭔가 거창하게 ‘기후위기 대응을 푸른아시아를 통해 내 손으로 직접 이뤄보겠다’는 그런 야심찬 생각은 없었어요.

 

 

현재 푸른아시아에서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푸른아시아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대외협력팀장으로 일했어요. 그 당시 ‘대외협력’이라는 것은 주로 푸른아시아를 널리 알리고 여러 파트너들에게 몽골 사업을 소개해서 함께 하도록 ‘꼬시는’ 일들이었는데요. 그 와중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당사국총회(COP10)가 경남 창원에서 열리면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활동을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때 푸른아시아가 활동하는 이슈에 대한 글로벌한 관점을 실질적으로 체득할 수 있었어요.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지구촌의 활동가들을 여럿 만나보며 자극도 받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2주 동안 창원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 그 결과 이가 한 개 ‘툭’ 빠지기도 해서, 임플란트도 그때 마흔 살 나이에 하게 됐어요. 살살할 걸 너무 열심히 일했나 봐요!

이듬해부터는 푸른아시아에서 국제사업국장, 국제사업실장을 거치면서 몽골 활동, 미얀마 활동을 총괄하는 일을 했어요. 하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항상 현장과의 진솔한 소통과 상호 이해임을 몸소 알게 됐습니다. 입장도 차이가 나고, 주관적‧객관적 환경은 변화무쌍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나날이었어요.

국제사업 업무를 한 8년 정도 하다가 지금의 사무처장직을 맡은 지 한 5~6년 된 것 같습니다. 현재는 본부 운영관리 업무뿐 아니라 몽골, 미얀마, 베트남 관련 국제사업과 지부 운영관리 업무도 들여다보고 있어요. 한마디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기보다는 ‘제너랄리스트(generalist)’라고 할까요? 이것저것 다 하는 거죠.

최근에는 글로벌 탄소중립과 탈탄소 사회 같은 주제를 다루는 ‘탈탄소전략기획실’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지구적 온실가스 저감, 특히 토양을 통한 탄소 흡수 부문, 탈탄소 사회혁신, 기후정의, 21세기적 남북문제, 개도국 기후위기 현장, 글로벌 정책, 한국의 탈탄소 활동, 시민실천 등의 다방면의 주제를 푸른아시아 활동으로 구체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꿈꾸는 세상이 있나요? 그런 세상이 있다면 본인의 역할이 무엇일지 소개해주세요!

 

‘꿈꾸는 세상’이라고요? 그런 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뭘 해야겠다’ ‘그다음 어떤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것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에는 조금 있었는데요. 이제는 저도 ‘꼰대’라 불려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기도 하고, ‘꿈이 뭐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요.

그래도 굳이 생각해 본다고 하면요. 인간이 모여서 사회적 삶들을 사는 것이 ‘디폴트’라고 하면, 그게 정부가 됐든, 시민사회가 됐던, 기업이 됐든 간에 인간과 인간, 사회와 사회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내 주장만 펼치지 않고, 그다음 네가 옳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너와 내가 의견이 좀 다른 것이기에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서로 들입다 싸우기만 하는 적(enemy)이 아니라, 맞수(adversary)로서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족할 것 같습니다.

작금의 지구적, 국내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는 없을 것 같고요. 파렴치하고 비상식적인 궤변들이나 판치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이게 또 좀 웃고 마음이 여유로우면 좋아질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고 제가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뭔가 좀 더 얻어야겠다는 욕망은 진작에 포기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예를 들면, 앞마당에 사슴이 뛰어놀고 뒷마당에는 수려한 자연환경이 있는 그런 곳, ‘오염되지 않은 지구에서 살고 싶다.’ 이런 것보다는 어차피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인간 간의 신뢰와 상호 이해, 이런 게 제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취미나 일상생활 얘기를 해주신다면요?

 

저는 주말에 ‘작업(work)’을 합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노동(labor)’과 ‘작업(work)’을 구분해서 설명한 바 있는데요. 제 방식대로 해석해보자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 만족적인 일이 ‘작업’인 것이죠. 사실 부모님께서 고령이시지만 파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셔서요. 저도 2월 말부터 김장할 때인 11월 말까지는 매주 토요일에 가서 부모님, 형제들을 만나 일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노는 건데요.

그런데 이걸 꾸준히 하다 보니 안 가면 몸도 쑤시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이 ‘작업’을 잘 하냐? 그건 또 아니라서 욕을 얻어먹는 일도 다반사고요. 실상은 생계에 필요한 농산물을 얻어오기 때문에, 어찌 보면 ‘노동’ 그것도 노예노동(?)이기도 하겠네요.

나머지 여가 시간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요. 일주일에 2번 정도 술 마시고 떠드는 것이 특기라면 특기죠. 가끔 ‘활동’ 이야기가 술자리 주제로 흐르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그럴 때는 흡사 ‘노동의 연장’이라 느껴져 짜증이 좀 나기도 합니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는 플레이스테이션5 게임(오픈월드 액션RPG)도 좀 했었는데, 그것도 요새는 귀찮습니다. 유튜브 쇼츠 보고 낄낄대다 잠에 들고 그런 게 취미가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문에 독서가 잘 안 돼서 큰일이라 생각은 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푸른아시아의 사무처장으로서 말씀드리자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여러 도전들, 특히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도전들이 있거든요. 시민사회, 기업, 정부, 개인의 삶 모두에 파도가 몰아쳐 오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 간에 대놓고 외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궤변과 거짓 정보가 판을 치지요.

어찌 되었든 ‘사회’를 지켜내야 하는데,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을 변혁하는 행위(action), 즉 정치의 중요성도 늘 그렇듯 중요하겠고요. 누구 하나가 뛰어나서, 또는 ‘우리 조직(정당, 기업 등등)이 다른 조직보다 이 부분은 좀 더 낫다’는 생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푸른아시아가 집중하는 기후위기 대응 영역의 협력자들을 시민사회에서 잘 모으고, 함께 실천하는 일들을 웃으면서 활동해 나갔으면 합니다. 무겁지만 가볍게, 반복이지만 지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활동해 나가는 단단한 터전인 푸른아시아를 시민 여러분들께서 더욱 많이 응원해 주시기를 마지막 부탁의 말씀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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