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권’, 소비와 환경을 다시 연결하다
숙명여대 SEM 노연정, 조아현 기자
스마트폰, 노트북, 가전제품 등 전자기기는 이제 우리의 생활과 완전히 맞닿아 있다. 자명종 대신 휴대폰 알람에 눈을 뜨고, 하루 종일 디지털 기기로 공부와 일을 이어가며, 여가 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배터리가 빨리 닳거나 화면이 금이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새 제품’을 떠올린다. 수리보다 교체가 더 익숙하고, 빠르고, 때때로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선택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개념이 있다. ‘수리권(Right to Repair: R2R)’. 이는 개인이 자신의 물건을 고쳐 쓸 권리이자, 사회가 합리적인 비용과 접근성으로 그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약속이다. 단순히 개인 차원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자원 활용 방식과 직결된 사회적 요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진출처 : 애플)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은 여전히 교체 중심적이다. 정식 서비스센터에 기기를 맡기면 부품과 인건비가 얹혀 새 제품과 맞먹는 비용이 청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설 수리점을 찾자니 정품 부품을 확보하기 어렵고, 수리를 받아도 안전성과 품질 보증이 불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제조사들이 부품 공급이나 정비 매뉴얼 공개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기업은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을 보인다. 최근 기업들이 빈번하게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여, 제품 교체의 주기를 좁히도록 유도하는 등 수리 대신 교체를 압박하는 심리적 진부화를 병행하기도 한다. 기업은 의도적으로 소비자의 반대편에 자리매김하며 소비자가 ‘합법적이고 안전한 수리’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결국 소비자는 비합리적인 상황 속에서 수리 대신 교체를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인다.
이쯤에서 진정한 우리들의 권리란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소할 수 있는 이 권리의 첫인상이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A/S 서비스 정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할 ‘수리권’이라는 개념은 이에 국한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수리권은 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을 설계, 제작하도록 하는 생산자의 생산과정부터 수리의 주체, 방식, 업체를 선택할 소비자의 이용 단계까지를 포괄한다. 결국 ‘수리를 고려할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한 한국의 세태 그 자체가 소비자들이 수리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환경에게 돌아온다. 최신 모델을 잇달아 구입하는 동안 버려지는 이전 세대 기기들은 재활용되기보다 폐기물로 전락한다. UN 전자폐기물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전 세계 전자 쓰레기 배출량은 536억톤으로, 2030년에는 740억 톤을 예상하고 있다. 전자폐기물 속에는 납,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동시에 리튬, 코발트 같은 희소 자원은 다시 채굴되어야 한다. 교체 중심의 소비가 결국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라는 이중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외는 이미 수리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폐해를 눈치챈 오픈국제수리연맹(Open Repair Alliance)은 2017년 런던에서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제 수리의 날’로 지정하였다. 폐기물이 초래하는 글로벌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리가 필수적임을 알리려는 의지를 보였다. 유럽연합(EU)은 가전제품 제조사에게 일정 기간 동안 수리용 부품 제공을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 제품의 수리 용이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수리 가능 지수’를 제품 라벨에 표시하도록 제도화했다. 미국 뉴욕주도 ‘디지털 공정 수리법’을 통해 제조사가 매뉴얼과 수리 부품을 공개하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고쳐 쓰기’의 편의성을 높인 것이 아니라, 수리라는 선택지를 제도적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게 했다는 점이다. 개인의 선의나 불편 감수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권리와 법으로 구조를 바꿨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달라져야 한다. ‘내 물건을 고쳐 쓰고 싶다’는 개인적 요구는 더 이상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제조사가 부품을 독점하고, 정부가 이를 방관하며, 소비자가 손쉽게 교체를 택하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한국 사회의 자원 순환률은 결코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부품 공급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제조사가 정당한 가격에 부품과 매뉴얼을 공개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에 수리권에 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으나. 이는 권고 사항에 불과할뿐 완고한 법적 규제의 틀이 잡혀있다고 할 수 없다. 즉, 수리권을 충분히 고려하고 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기반이 필수적일 것이다.
아울러 사설 수리업체의 기술 역량과 안전성을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해 소비자가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쳐 쓰는 것’의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노력을 넘어서 개인, 지역사회의 차원에서 직접 권리를 수호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네덜란드에서 지역 시민들이 서로의 수리권을 보호하고자 ‘수리 카페’라는 공동체를 마련한 사례를 눈여겨볼 수 있다. 수리 및 수선을 도맡는 제로웨이스트샵을 고려할 수도 있다.
수리권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권리다. 한국이 지금까지 빠른 소비 문화를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수리가 당연한 선택지가 될 때 우리는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더 건강한 순환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스마트폰 1대의 수명을 1년만 연장해도 자동차 200만대의 운행을 중지한 것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은 한국 사회가 교체 중심 문화를 넘어 새로운 길을 택해야 할 때다. 수리권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노력 없이는 우리의 ‘편리한 소비’는 곧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불편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수리권은 미래를 위한 권리이자, 환경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권리이다.
‘수리권’, 소비와 환경을 다시 연결하다
숙명여대 SEM 노연정, 조아현 기자
스마트폰, 노트북, 가전제품 등 전자기기는 이제 우리의 생활과 완전히 맞닿아 있다. 자명종 대신 휴대폰 알람에 눈을 뜨고, 하루 종일 디지털 기기로 공부와 일을 이어가며, 여가 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배터리가 빨리 닳거나 화면이 금이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새 제품’을 떠올린다. 수리보다 교체가 더 익숙하고, 빠르고, 때때로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선택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개념이 있다. ‘수리권(Right to Repair: R2R)’. 이는 개인이 자신의 물건을 고쳐 쓸 권리이자, 사회가 합리적인 비용과 접근성으로 그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약속이다. 단순히 개인 차원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자원 활용 방식과 직결된 사회적 요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진출처 : 애플)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은 여전히 교체 중심적이다. 정식 서비스센터에 기기를 맡기면 부품과 인건비가 얹혀 새 제품과 맞먹는 비용이 청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설 수리점을 찾자니 정품 부품을 확보하기 어렵고, 수리를 받아도 안전성과 품질 보증이 불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제조사들이 부품 공급이나 정비 매뉴얼 공개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기업은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을 보인다. 최근 기업들이 빈번하게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여, 제품 교체의 주기를 좁히도록 유도하는 등 수리 대신 교체를 압박하는 심리적 진부화를 병행하기도 한다. 기업은 의도적으로 소비자의 반대편에 자리매김하며 소비자가 ‘합법적이고 안전한 수리’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결국 소비자는 비합리적인 상황 속에서 수리 대신 교체를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인다.
이쯤에서 진정한 우리들의 권리란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소할 수 있는 이 권리의 첫인상이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A/S 서비스 정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할 ‘수리권’이라는 개념은 이에 국한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수리권은 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을 설계, 제작하도록 하는 생산자의 생산과정부터 수리의 주체, 방식, 업체를 선택할 소비자의 이용 단계까지를 포괄한다. 결국 ‘수리를 고려할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한 한국의 세태 그 자체가 소비자들이 수리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환경에게 돌아온다. 최신 모델을 잇달아 구입하는 동안 버려지는 이전 세대 기기들은 재활용되기보다 폐기물로 전락한다. UN 전자폐기물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전 세계 전자 쓰레기 배출량은 536억톤으로, 2030년에는 740억 톤을 예상하고 있다. 전자폐기물 속에는 납,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동시에 리튬, 코발트 같은 희소 자원은 다시 채굴되어야 한다. 교체 중심의 소비가 결국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라는 이중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외는 이미 수리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폐해를 눈치챈 오픈국제수리연맹(Open Repair Alliance)은 2017년 런던에서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제 수리의 날’로 지정하였다. 폐기물이 초래하는 글로벌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리가 필수적임을 알리려는 의지를 보였다. 유럽연합(EU)은 가전제품 제조사에게 일정 기간 동안 수리용 부품 제공을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 제품의 수리 용이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수리 가능 지수’를 제품 라벨에 표시하도록 제도화했다. 미국 뉴욕주도 ‘디지털 공정 수리법’을 통해 제조사가 매뉴얼과 수리 부품을 공개하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고쳐 쓰기’의 편의성을 높인 것이 아니라, 수리라는 선택지를 제도적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게 했다는 점이다. 개인의 선의나 불편 감수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권리와 법으로 구조를 바꿨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달라져야 한다. ‘내 물건을 고쳐 쓰고 싶다’는 개인적 요구는 더 이상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제조사가 부품을 독점하고, 정부가 이를 방관하며, 소비자가 손쉽게 교체를 택하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한국 사회의 자원 순환률은 결코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부품 공급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제조사가 정당한 가격에 부품과 매뉴얼을 공개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에 수리권에 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으나. 이는 권고 사항에 불과할뿐 완고한 법적 규제의 틀이 잡혀있다고 할 수 없다. 즉, 수리권을 충분히 고려하고 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기반이 필수적일 것이다.
아울러 사설 수리업체의 기술 역량과 안전성을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해 소비자가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쳐 쓰는 것’의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노력을 넘어서 개인, 지역사회의 차원에서 직접 권리를 수호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네덜란드에서 지역 시민들이 서로의 수리권을 보호하고자 ‘수리 카페’라는 공동체를 마련한 사례를 눈여겨볼 수 있다. 수리 및 수선을 도맡는 제로웨이스트샵을 고려할 수도 있다.
수리권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권리다. 한국이 지금까지 빠른 소비 문화를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수리가 당연한 선택지가 될 때 우리는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더 건강한 순환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스마트폰 1대의 수명을 1년만 연장해도 자동차 200만대의 운행을 중지한 것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은 한국 사회가 교체 중심 문화를 넘어 새로운 길을 택해야 할 때다. 수리권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노력 없이는 우리의 ‘편리한 소비’는 곧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불편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수리권은 미래를 위한 권리이자, 환경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권리이다.